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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언젠가 알프스를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 아마도 샤모니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다.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 산맥의 심장부에 있는 작은 마을 샤모니(Chamonix)는 산악문화의 뿌리이자, ‘알피니즘’이 태동한 현장이라 불린다. 등산학교에서 자크 발마(Jacques Balmat)와 미셸 파카르(Michel-Gabriel Paccard)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부터 내 마음은 이미 샤모니에 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산은 어떤 모습이고, 그 산을 품고 있는 마을의 모습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Tour du Mont Blanc(뚜르 뒤 몽블랑)이라고 부르는 몽블랑 일주를 신혼여행 일정에 넣으며 방문한 샤모니 마을은 마치 꿈속에서 꺼낸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이곳은 여름철이면 몽블랑을 오르려는 수백 명의 등반가들이 마을에 머무르고, 겨울이면 전 세계의 스키어들이 이곳의 설원을 달린다. 여전히 수많은 젊은 산악인들이 이곳을 찾고, 새로운 도전이 매년 기록된다.
그래서 일까. 샤모니 중심 광장을 걷다 보면 마트 앞이고 매장 앞이고 어디서든 등산객을 만나게 되고 등반가들이 벗어둔 배낭이 이곳의 아주 흔한 일상처럼 보였다.
산악 도시인 만큼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는데 보통 12월부터 4월 초까지는 스키와 스노우 보드 시즌이고 여름에 해당하는 6월 말부터 9월까지는 샤모니 주변부를 조금 더 깊게 알아 볼 수 있는 하이킹, 암벽 등반,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알프스 산맥의 여러 빙하에서 녹은 물이 모여 시작되는 아르브강(Arve River)에서 카약타기 체험을 하거나 산악자전거를 타고 만년설이 있는 샤모니 계곡을 따라 빙하 아래 펼쳐지는 싱글트랙을 달려볼 수도 있다. 그러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취와 동시에 모험과 설렘이 가득한 도시인 것이다.
평소 산행을 즐기지 않는다면 대게 샤모니 중심에서 2박 3일을 머물게 되는데 첫날에는 샤모니 중심부를 산책하며 마을 분위기를 느끼고, 둘째 날엔 에귀유 뒤 미디 케이블카를 타고 몽블랑을 가까이서 조망한 뒤, 오후에는 플랑 드 레귀유에서 락블루 호수까지 짧은 하이킹을 즐길 수 있고 마지막 날엔 몽땅베르 열차를 타고 메르 드 글라스를 방문하거나, 여유롭게 카페 투어와 기념품 쇼핑을 하며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우리는 한달이 조금 넘는 일정을 프랑스에서 보냈지만 거의 절반 이상이 샤모니와 몽블랑 일주에 할애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히 시간이 된다면 샤모니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둘러 보길 권하고 싶다.
우선, 입장료가 필요한 관광지 외에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버스 티켓으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둘러보는 데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에귀유 뒤 미디 케이블카나 몽땅베르 열차처럼 고산 전망대에 오르는 교통수단은 1인당 60~70유로 정도 소요되지만, 샤모니 관광청에서 제공하는 몽블랑 멀티패스(Mont Blanc Multipass)를 이용하면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여러 관광지를 계획 중이라면 미리 구입해두는 게 좋다.
샤모니의 중심 광장인 Place Balmat는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자주 열리고 다양한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옆으로 흐르는 아르브강(L’Arve)은 강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조용히 걷기에 좋은데, 특히 아침 이른 시간에 걷다 보면 알프스의 맑은 공기와 함께 고요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한 Rue du Docteur Paccard 거리에는 예쁜 초콜릿 가게와 빵집, 지역 특산품 상점이 많아 작은 골목 하나하나가 여행의 추억으로 남는다.
전 세계 아웃도어 마니아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만큼 아웃도어 상점도 정말 많고 수준도 굉장히 높은데, 특히 알파인 클라이밍, 스키, 트레일 러닝, 산악 자전거 용품은 말 그대로 천국이다.
매장 직원들도 직접 사용해보고 판매하는 분위기라서 현지 가게만의 실전적인 노하우도 얻을 수 있고, 렌탈이나 수선 가능한 공간도 있어서 현지에서 찢어진 옷이나 망가진 장비 수리도 가능하다. 한 번에 100유로 이상 구매 시 부가세 환급이 가능하니 여권과 스탬프 받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비록 읽지는 못하지만(?) 서점에 방문해 산악 관련 서적과 등반과 관련된 재미있는 엽서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보자.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산행 책자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시간이 조금 더 넉넉하다면 샤모니 근처에는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도 많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마르티니(Martigny)는 기차로 약 1시간 거리인데, 예술 전시와 와인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쪽으로는 쿠르마이어(Courmayeur)가 가깝고, 몽블랑 터널을 지나면 바로 연결된다. 가까운 산속에는 라플레제르(La Flégère) 전망대도 있으며, 이곳에서 시작되는 여러 트레일은 고산 호수들과 빙하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사진은 이탈리아 쿠르마이어(Courmayeur)
샤모니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여행지이다. 거대한 몽블랑을 마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어진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이 작은 마을은, 바쁜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포근한 품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꼭 한 번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그곳에선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